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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뻔한 장인이 만든 브랜드, 유럽 박람회에서 주목받다” – 몰도바 로컬 와인 브랜드 이야기

by 설렘(seollem2508) 2025. 8. 7.

 

잊힌 와인 산지, 몰도바의 귀환

“사라질 뻔한 장인이 만든 브랜드, 유럽 박람회에서 주목받다” – 몰도바 로컬 와인 브랜드 이야기
“사라질 뻔한 장인이 만든 브랜드, 유럽 박람회에서 주목받다” – 몰도바 로컬 와인 브랜드 이야기


유럽에서 와인 하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만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몰도바는 수천 년의 와인 제조 역사를 가진 유럽의 숨은 와인 강국입니다. 흑해와 가까운 온화한 기후, 비옥한 토양, 경사진 포도밭 등 와인 생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구소련 시절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와인 셀러'라는 별명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련 해체 이후 와인 산업도 급속히 쇠퇴했습니다. 많은 양조장이 문을 닫았고, 고품질 수작업 와인을 만들던 장인들도 생계를 위해 직업을 포기하거나 도시로 떠나야 했습니다. 몰도바의 와인은 세계 시장에서 값싼 벌크 와인으로 취급되며, '저렴하지만 개성이 없는 술'이라는 이미지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 와인 장인, 알렉세이 플로렌츠는 자신이 물려받은 가족 포도밭과 지하 와인 셀러를 포기하지 않고 브랜드화를 통한 고급화 전략을 택합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몰도바 와인의 부활이 시작됩니다.

 

오늘은 몰도바 로컬 와인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장인의 와인이 ‘브랜드’가 되기까지


① 수작업과 전통을 디자인으로 연결하다
알렉세이는 와인 제조에서 가장 전통적인 방식인 ‘암포라 발효’를 고수했습니다. 이는 도자기로 만든 큰 항아리에 포도즙을 넣고, 자연 효모만으로 장기간 발효하는 방식으로,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깊고 복합적인 풍미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전통 방식은 처음에는 ‘구식’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이 고집을 오히려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삼았습니다.

디자인 에이전시와 협업해 암포라의 질감과 색감을 모티브로 한 와인 병 디자인을 만들고, 라벨에는 조부모의 손글씨를 그대로 사용해 스토리텔링 중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했습니다.

 

② 박람회, “로컬 브랜드가 세계 무대에 서는 길”
알렉세이는 유럽 각국에서 열리는 와인 박람회에 샘플을 들고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2~3년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귀국해야 했지만, 5년째 참가한 독일 뒤셀도르프의 ProWein 박람회에서 프랑스 소믈리에 출신 수입업자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는 “지금까지 맛본 어떤 동유럽 와인보다도 복합적이며 감동적인 맛”이라는 평가를 내리며, 유럽 고급 와인 시장에 소개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후 플로렌츠 와인은 벨기에, 독일, 덴마크의 고급 레스토랑 와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몰도바 최초로 ‘장인 인증 와인 브랜드’로 국제 유통망에 진입하게 됩니다.

 

③ 와인을 넘어 ‘문화’로 확장된 브랜드
성공 이후에도 알렉세이는 대량 생산이나 투자유치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년 2만 병 미만의 와인만 생산하며 지역 예술가, 도예가와 협업한 소량 한정판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제품은 몰도바 민속 설화에서 착안한 '늑대의 피(Pasarea Lupului)' 와인으로, 라벨과 포장에 지역 신화 요소를 시각화했습니다. 이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박람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비EU 와인' 상을 수상하며 문화적 가치가 있는 브랜드로 인정받았습니다.

 

작은 브랜드, 큰 감동: 몰도바 와인의 세계 전략

 

장인성(authenticity)을 수출하라
세계 와인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기술’이 아니라 ‘진정성’(authenticity)입니다. 프랑스·이탈리아처럼 이미 문화로 각인된 국가들을 제외하면, 신흥 와인 브랜드들은 기술 경쟁보다 감성, 철학, 스토리에서 승부해야 합니다.

플로렌츠 와인은 생산량이 적고 기술적으로는 전통적이지만, 그 정통성과 스토리를 브랜드화하여 시장의 틈새를 공략했습니다. 제품 하나하나가 장인의 철학을 담은 ‘작품’으로 인정받으면서도, 접근 가능한 가격대와 정서적 매력을 통해 경험 기반 소비자층을 사로잡았습니다.

 

고립된 로컬 브랜드의 글로벌 점프는 ‘협업’이 해답
알렉세이는 디자이너, 수입업자, 예술가, 소믈리에와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특히 ‘문화 번역자’ 역할을 해주는 파트너들은 몰도바 와인의 가치와 이야기를 현지 시장의 언어로 재구성해줬습니다.

이는 많은 로컬 브랜드들이 간과하는 부분입니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과 그것을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작업입니다. 알렉세이의 협업 전략은 그 간극을 현명하게 메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브랜드는 외면이 아닌, 내면을 말한다
플로렌츠 와인의 병 라벨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이 병 속에는 포도보다 더 오래된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는 단지 와인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 가족의 기억, 장인의 철학까지 담겨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그런 브랜드에 감동합니다.

소규모 브랜드라도 이야기와 철학이 담긴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사례의 가장 큰 메시지입니다.

 

잊힌 장인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브랜드

 

몰도바 와인 브랜드의 이야기는 단지 맛 좋은 와인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통과 문화, 감정과 철학이 어떻게 시장성 있는 브랜드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소규모 지역 브랜드, 특히 전통 산업에 기반한 브랜드들이 글로벌 시장에 나아가고 싶다면

꼭 기억해야 할 세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정체성을 단순히 유지하지 말고, 브랜딩하라.

 - 혼자서 해외에 나가지 말고, 협업의 언어를 배워라.

 - 기술보다 진정성, 기능보다 감동을 먼저 전달하라.